
[켄택]그의 고양이로 살아가는 방법
턕련
@TaekRyeon
추천BGM : 켄 - 나랑 만나볼래요
[켄택] 그의 고양이로 살아가는 방법
짹짹, 상큼한 아침을 알리는 참새 소리가 싱그러웠다. 유독 따뜻하고 예뻤던 아침. 밤새 놀다 잠드는 날이 많았지만 그 날 만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아침 산책을 나선 참이었다. 윤기가 나는 눈 같은 하얀 털이 가득한 네 발을 이용해 아름답고 쭉 뻗은 몸을 살포시 벤치에 앉혀 분홍빛이 도는 혀를 이용해 몸을 단정히 했다. 사람이 오는지도 모른 채 몸을 핥던 '고양이'는 자신의 옆으로 앉은 한 남자를 세수를 다 끝낸 후에야 볼 수 있었다. 오똑 솟은 코와 예쁘고 사랑스러운 눈매가 날카로웠다. 입술은 붉으스름하니 예뻤고, 우수에 젖은 눈동자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고양이는 매일 아침 산책을 나섰다. 매일 똑같은 코스를 돌고 돌아 일주일 째 되는 아침, 또 다시 그를 같은 곳에서 만났다.
"너, 여기 매일 오더라"
고양이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남자의 목소리에 자던 눈을 뜨고는 푸른빛이 도는 예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바쁘지도 않나봐. 툭 하고 던지는 말에 고양이는 어째서인지 이 남자가 외로운 것처럼 느껴졌다. 냐아-예쁜 성대를 울리며 남자의 무릎 위로 올라가자 언제 준비한 것인지 손에 간식을 들고 있었다.
'츄르..!!'
고양이는 한참을 손에 든 간식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하얀 고양이를 만져주며 웃음을 지었다. 눈이 접히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단정히 내려앉아있던 머리카락은 한참을 들썩 거렸다. 그 때 마침 바람이 불어왔다. 가을 날씨에 맞게 조금 쌀쌀했지만, 그의 뒤로 흩날리는 낙엽들은 마치 영화처럼 아름다웠다. 물론 남자의 미모도 한 몫 했을 것이었다.
"너 귀엽다"
너도.
하얀 고양이는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남자에게 말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 우울해졌다. 자신의 몸을 쓸어주는 따뜻한 손이 기분 좋았다. 자신의 발 보다 훨씬 큰 남자의 손이 따뜻하고 기분 좋았다. 남자는 시간이 되자 일어나 발길을 돌리며 하얀 고양이에게 말했다.
"우리, 또 보자"
그래, 또 보자. 하얀 고양이도 마음속으로 그에게 말을 전한 뒤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켄택] 그의 고양이로 살아가는 방법
아침은 늘 힘들다. 밤에 일찍 자는 버릇을 하지 않는 택운에게는 세상 살아가며 무척이나 힘든 것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었다. 학교는 왜 가야하는 것이며, 학교를 가서 뭘 배우라고. 난 고양이로 있는 게 행복한데. 부모님이 고양이 수인이었던 탓에 택운은 아침마다 고양이가 되는 버릇도 가지고 있었다. 하얀 윤기 가득한 털은 고고하고 도도하고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택운은 일어나 아침마다 산책을 나갔다. 하루 중 유일하게 고양이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택운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길 바라셨다. 고양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고 인간으로 이기적으로, 본인의 이익만 추구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동물은 그냥 죽여버릴 수 있는 그런 인간으로. 그래서 택운은 그런 인간보다는 고양이가 좋았다.
아침 산책을 마치면 샤워를 했고 교복을 입었다. 19살인 택운은 학교를 다니고 있고, 대학교도 가기로 부모님과 약속했다. 그 이후만 되면 고양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찾을 것이고 고양이들과 함께 지낼것이라 다짐하는 택운. 그런 그에게 요즘 즐거운 시간이 생겼다. 산책할 때 한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산책을 빠짐없이 나갔다. 그 남자도 항상 같은 시간에 그 자리에 나타나곤 했다. 다음에 길 가다가 만나면 아는 척 해봐야지.
"이재환..?"
새로운 학기가 되어 학교로 간 택운은 친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재환, 중학생 때부터 무섭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던 남자가 있었다. 무뚝뚝하며 웃는 표정을 본 적이 없고 무섭다던 그 사람. 택운은 그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지만 워낙 유명해서 소문의 시옷자도 듣지 않는 택운에게도 소문이 들려올 정도였다. 관심 없지만.
학교 정문을 통과하며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교복검사를 나온 학생들의 눈을 어째서인지 마주치지 못한 채 교실로 들어오면 항상 함께 점심을 먹는 절친이라는 친구들이 있다. 택운 같은 고양이수인들은, 특히 택운은 고양이로 살 때보다 사람으로 살면 참으로 힘들고 귀찮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고양이는 자유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며 약 12년을 학교라는 틀 안에서 규칙을 지켜가며 살아야하는 것이 힘들다 생각하는 것이었다. 1년만 버티자. 20살이 되면 더 넓은 곳으로 여행을 떠날거야! 라며 19살의 택운은 말했다.
택운이 학교에서 좋아하는 것이 딱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급식시간이었다. 택운은 인간 음식을 매우매우 사랑했다. 인간 음식을 먹을 때 마다 인간이 되는 것만 같았다. 두번째는 바로 축구였다.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택운은 공을 가지고 노는 것도 좋아했다. 고양이의 습성도 한 몫 하였지만 발을 가지고 공을 가지고 노는 것에 재미가 들린 것이다. 그래서 늘 점심을 먹고 나면 축구를 했다. 저 멀리서 누군가 지켜보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채.
-
"이재환, 뭐 하냐"
"...구경"
"구경?"
재환은 친구의 물음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친구는 재환의 시선을 따라 학교 운동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많은 학생 중 유독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는데 학교 내에서 가장 유명한 선배였다. 조용하고 공부에는 영 재능이 없지만 축구를 무척이나 잘하고 스카웃 제의까지 있었다던, 하지만 자신은 고양이를 사랑해서 고양이 관련 직업을 하고 싶다며 거절한 특이한 선배였다. 하얀 피부에 고양이 같이 날카로운 눈빛을 한 선배였는데 눈빛이 꽤나 강렬하고 순수했다. 근데 이재환이 지금 그 선배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사람한테 관심 없는 애가?
"야, 너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닮았어"
"뭐?"
"내가 아는 고양이랑 닮았다고"
친구는 재환의 말에 이상하다는 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재환은 그가 꼭 항상 아침 운동 중 만나는 하얀 고양이 같았다. 다른 사람과 파장이 달랐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저 사람이 그 하얀 고양이라면. 하얀 고양이와 파장이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건 17년 살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도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기에, 그래서 의심할 수 있었다. 조금, 알아봐야겠어.
며칠 후, 저녁을 먹고 야자를 하러 올라온 택운은 멀리서 보이는 익숙한 느낌의 남자가 보였다. 주변 학생들이 웅성거렸고, 택운의 친구마저 그들을 바라보며 택운에게 말을 걸었다.
"저거 이재환 아니야? 왜 여기 있지?"
이...재환..? 그 싸움 잘한다던 그 이재환? 저 사람이 이재환? 택운은 가까워질수록 불안해했다. 문득 그 사람이 생각이 났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기억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인영이 뚜렷해져만 갔다. 그 사람이 맞는 것만 같았다. 아침마다 살풋 웃어주며 자신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었던 그 상냥한 남자. 자신을 상냥하게 쓰다듬어주었던 바로 그 남자..!!!
딸꾹!!!
재환이 택운의 반 앞에서 땅을 보며 기다리다 고개를 들었고, 들자마자 택운과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택운은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딸꾹! 윽...히끅"
"어, 야 갑자가 왜 그래?"
"아뮤,것도 흐익끅!!"
재환은 택운을 발견하자마자 딸꾹질하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택운의 앞으로 다가갔다. 택운이 큰 키에 피지컬이 좋아 웬만하면 택운과 눈이 마주치는 사람이 없었는데 재환은 그와 비슷했다. 눈높이도 맞아 딱 눈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정택운 선배님 되십니까?"
아침과는 다른 무뚝뚝하고 낮아진 목소리에 택운은 더 놀라버렸고, 입을 틀어막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요"
"히끅,,지금?"
"..야자 끝나고라도 괜찮습니다. 선배님 괜찮으신 시간에요"
",,응 알았어. 야자 끝나고 봐,,,,,요"
"...말 놓으셔도 됩니다. 그럼 끝나고 보죠"
끄덕.
택운의 대답을 듣자 재환은 인사를 하고는 택운을 지나쳐갔고, 동시에 택운은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학생, 이었다니, 심지어, 연하....
연하에게 머리가 쓰다듬어지고 연하에게 먹을 것을 얻어 먹었다는 것에 택운은 어째서인지 창피했다. 아무도 모르는데 본인만 난리인 것이다. 야자시간 중 선생님이 감독하는 도중에도 택운은 펜을 움직이지 않은 채 멍만 때리고 있었다.
"...정택운?"
택운이 뭔가 이상하자 택운의 이름을 부른 선생님. 택운은 시선을 돌려 선생님을 바라보았고, 눈동자를 흔들리며 선생님에게 말했다.
"쌤...저 어떡하죠..."
"뭐가? 뭐 고민 있어?"
"저...어떡하죠...뭐 잘못한 거 있나 걔가 절 왜 불렀을까요 왜 보자 한걸까요ㅠ"
선생님은 뭔가 이상한 택운에 고개를 돌려 택운의 친구들을 보았지만 그들도 택운이 왜 그러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택운이 아무것도 아니라며 멈췄던 손을 움직였고 선생님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가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이 가고 또 가고 흘러서 야자가 끝이 나고 1학년은 3학년보다 일찍 끝나는 것이었는지 어느새 재환이 와서 택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택운은 친구들에게 인사한 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재환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얘기할까 다른 곳에서 얘기할까?"
"..장소는 제가 제공해도 되겠습니까?"
"뭐..위험한 곳만 아니면."
재환은 택운을 데리고 교문으로 향했다. 하교하는 학생들이 보였고, 교문에는 고급진 깨끗한 차량이 한 대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재환을 보고 달려오는 깨끗한 수트 차림의 남성이 있었다.
"도련님"
"오늘 손님과 함께 갈 거 에요"
"접대실을 준비해놓으라고 하겠습니다"
"그것도 같이 놓으라고 하세요"
"네"
...대체 저게 무슨 말 인거지. 택운은 알 수 없는 대화 내용에 재환만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재환은 그저 차에 타라며 택운을 재촉했다.
"그러니까 지금 너네 집에 간다는 거지..?"
"네, 중요한 이야기라 밖에서 나누기 좀 그래서요"
끄덕.
조금 미심쩍지만 어쨌든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에 타인이 없다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며 택운은 차에 탔고 재환은 택운를 따라 차에 몸을 옮겼다. 사람의 숨 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무거운 공기에 택운은 숨이 막혀왔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는 거지. 불안한 마음과 평행을 이룬 고요함이 차 안 공간에 향이 퍼지듯 풍겨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도착한 듯, 커다란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차가 들어갔다. 몇 분 정도 더 가자 커다란 집이 하나 나왔고, 재환은 익숙하게 차에서 내려 택운을 바라보았다.
"...안 내려요?"
"어? 아, 내려야지"
대체 얘는 뭐하는 애야...?
차에서 내린 택운은 어마무시한 저택과 그 주변을 바라보며 재환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다. 계단을 한 번 더 올라가야만 보이는 대문과 계단 바로 옆쪽으로부터 운동장보다 더 큰 크기의 잔디밭과 나무들. 뭐하는 곳이야 여기 그냥 집 맞냐고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냐고..!!! 택운은 집에서부터 자신을 압도하는 재환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나는 이런 애한테 뭘 외롭다고 느낀 것이며, 뭐가 좋다고 따라와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난리인거야..!! 멍하니 그의 집을 보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택운의 표정이 재환에게 꽤나 웃기고 재미있었다.
"가시죠"
"아, 응"
재환이 움직이자 따라 움직이는 택운을 보며 재환의 얼굴에는 슬쩍 비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택운은 잘 몰랐지만. 접대실로 온 재환과 택운. 테이블 위에 여러가지의 작은 과자들과 쿠키들이 있었고 커피와 차도 함께 놓여져 있었다. 찻잔도 흔히 볼 수 있는 찻잔이 아닌 듯 예쁘고 귀한 느낌이었고, 그 옆에 놓여있는 찻주전자도 고풍스러웠다. 벽에는 귀해보이는 그림의 액자들이 걸려져 있어 그림에 압도당해 버릴 정도였다. 그리고, 테이블 위의 서류봉투까지. 재환은 택운에게 의자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고, 택운이 앉자 자연스레 물었다.
"차 드실래요 커피 드실래요?"
"어...나 아무거나..."
"차로 하죠."
재환은 찻주전자를 들어서는 택운 앞에 있는 찻잔에 따라주었다. 쪼로록, 주전자 입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들을 보면서도 택운은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에 대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재환이 자신의 찻잔에도 차를 따랐고, 그제서야 택운의 앞에 앉아 택운이 지금까지 궁금했던 것에 대해 입을 열었다.
"선배, 고양이죠?"
".......어?"
갑자기 훅 들어오는 본론에 택운은 정신을 못 차렸다. 방금 자신이 잘못 들었던 것이 아닐까, 아니 뒤통수 맞지 않도록 서론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방금 자신이 들은 것은 진짜 제대로 들었던 것이 맞을까. 택운은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을 느꼈고, 재환은 그런 그를 보며 확신한 사실을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제가 최근에 하얀 고양이를 만났거든요. 제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 아주 똑똑한 고양이었어요. 그런데 학교 들어와서 선배님을 아주 우연히도 운동장에서 봤어요. 말도 안되지만 선배님이 그 하얀 고양이랑 겹쳐 보이더라구요"
"......."
재환은 한 템포 이야기를 끊었고 차를 한 번 홀짝 마시고는 다시 말했다.
"그래서 알아봤죠. 며칠동안 선배님의 동선이나 행동들을. 그리고 알게 됐죠. 정택운이 하얀 고양이구나."
".....!!!!"
"수인이라는 게 진짜 있을 줄 몰랐는데 말이죠"
택운은 재환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그저 벌벌 떨고만 있었다. 들키면 안 된다고, 어렸을 때부터 주구장창 들어왔던 소리였다. 들키게 되면 분명 실험대상이 되어버릴 거라고. 한 사람이라도 들키면 가족 모두가 위험해진다고. 항상 부모님께 택운은 교육을 받아왔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재미있었어요?"
"뭐..?"
"고양이로 있으면서 날 위로하면서, 학교에서는 날 비웃었어요?"
"그게 무슨 ㅁ,,"
재환은 택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택운은 깜짝 놀라 하던 말도 멈추게 되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날카롭고 매서운 눈에, 하던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 저 사람은 지금 화가 났구나.
"...아니야, 널 비웃은 적 없어. 너 인줄도 몰랐고, 알게 된 것도 오늘이야."
"......거짓말"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발 한 발 천천히 택운의 앞으로 다가왔다. 목소리에 힘을 주고 택운을 진득하게 바라보며.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택운의 턱을 들게 하며.
"진짜 눈치 못 챘어요?"
"......"
"내가 그 사람이라는거?"
진짜였다. 전혀 알 수 없었다. 이재환이 그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관심도 없었고 무엇보다 소문과 자신을 상냥하게 쓰다듬어준 남자가 너무나 달랐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런 눈빛이 아니었다.
".......하얀 고양이가 왜 나랑 겹쳐 보였던 거야?"
택운이 눈을 피하며 물어보자 재환은 한숨을 한 번 쉬었고, 택운의 턱 밑에 위치해있던 손을 거두었다. 그리곤 자리에 앉아 택운을 바라보았다.
"고양이로 변해보세요"
"야"
"뭘 착각하나본데 정택운, 당신은 나한테 약점이 잡힌거에요."
"...증거도 없는데 누가 믿어주겠냐"
"증거도 안 놔두고 당신을 불렀을까봐?"
"......."
사실 택운은 이 방에 들어와 가장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그림들도 아니고, 고풍스런 찻주전자도 아니었으며 예쁜 찻잔도 아니었다. 이 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서류봉투. 택운의 눈이 봉투로 향하자 재환은 이제서야 눈치 챘냐는 듯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택운의 턱을 잡았던 예쁜 손가락으로 서류 봉투 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요즘 폰으로도 영상 잘 찍히잖아요"
재환은 폰의 잠금을 열어 갤러리라 적힌 곳으로 들어갔고 한 영상을 눌렀다. 시작 되지 않은 채 썸네일만 보였지만 썸네일에는 하얀 고양이, 즉 택운이 찍혀있었다. 재환이 영상을 시작하려하자 택운이 얼른 재환의 손을 잡았다.
"그만. 안 보여줘도 돼."
"....."
"변할테니까...그러니까 그러지마."
택운은 자신이 고양이로 변하거나 변하는 모습을 굳이 보고 싶지 않았다. 이런 걸로 들켰다는 게, 평소 조심성 없이 행동했던 것이 후회되고 화가 났다. 그런 택운의 표정을 보던 재환이 폰의 전원을 끄자, 택운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조금 떨어졌다.
퐁!
귀여운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들이 나왔고, 동시에 재환이 매일 아침마다 보았던 하얀 고양이가 도도하게 의자 위에 올라타 앉아있었다.
"...진짜 고양이네"
재환이 한 마디 하자 택운은 폴짝 뛰어 테이블 위로 올라가 재환의 앞에 고고하게 앉았다.
"[...왜 하얀 고양이랑 나랑 겹쳐 보였는지 알려줘 앞으로 내가 주의해야할 테니까..]"
갑작스레 울리는 택운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재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택운에게 물었다.
"...뭐야, 말도 할 줄 알아요?"
"[전달은 가능해]"
"근데 왜 지금까지 아무 말 안 했어요?"
"[고양이로 아는 사람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해, 그것보다 너 왜 그렇게 생각했냐구. 보통 사람들은 비슷한 인간을 봐도 하얀 고양이라고 생각 안 한단 말이야]"
얘기를 해주지 않으면 끝까지 붙어서 고집을 피울 것 같은 느낌에 재환은 택운의 머리를 아침과 똑같이 만져주며 말했다
"저도 선배랑 똑같아요. 수인은 아니지만 특별한 능력을 가졌죠. 아침에 늘 보던 고양이 파장이랑 선배 파장이랑 똑같았어요. 그래서 눈치 채고 선배 따라다녔죠. 몰래 따라다닌 건 사과할게요. 형 비밀을 캐고 싶었어요"
"[사과한다고 되는 거 아니거든. 이거 엄연히 범죄라고..]"
"네 죄송해요. 그런데 하는 김에 협박 하나 더 해도 되나요?"
"[...뭐?]"
택운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앞에서 아까와는 전혀 다른 싱글벙글 웃는 얼굴을 하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이 사람은 자신을 협박해서 고양이로 변하게까지 했다. 그런데 협박을 하나 더 한다고? 협박을 하면 자신은 들을 수밖에 없다. 그걸 알고 저 사람은 일부러 '협박'한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택운에게 그를 밀어내고 거절할 힘이 없었다.
"[...뭔데...]"
"내일부터 저랑 학교 같이 다녀요^ㄴ^"
"[....그거면 돼?]"
"네"
"[진짜?]"
"네, 학교에서 점심도 저랑 같이 먹고 저녁도 저랑 같이 먹어요. 쉬는 시간 마다 같이 매점도 가고 같이 공부도 해요."
"[왜..?]"
"선배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협박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선택이라도 하게 해드릴게요. 이 영상이 온 세계에 뿌려지는 걸 원하세요, 아니면 저랑 같이 다니길 원하세요?"
택운은 살짝 웃으며 말하는 재환에 화가 났지만 본인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싫지는 않았다. 이런 모순적인 생각에 택운은 대답하길 망설이게 되었지만 재환은 그의 대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저 웃으며 기다리기만 했다. 그리고 택운은 오랜 생각 끝에 자존심을 굽힌 채 대답했다.
"...내일 보자, 후배"
-
"형!"
등굣길, 학생들이 많은 자리에서 들려오는 아찔한 목소리. 택운은 슬쩍 뒤를 돌아 어색한 웃음을 지어냈다. 그의 뒤에서는 차에서 내려 걸어오는 재환이 보였고, 함께 등교하던 친구들은 무슨 일이냐는 듯 택운을 바라보았다. 택운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재환을 바라보았다.
"왔어?"
"형, 저랑 약속했던 거 안 잊어버리셨죠?"
활짝 웃으며 이야기 하는 재환.
두근.
택운은 자신의 심장이 살짝 뛰는 것을 느끼고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정택운 정신 차려, 저 녀석은 날 협박하고 협박한 사람이라고!! 절대 두근거릴만한 상대가 아니야!! 그냥,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재환의 표정을 보고 놀란 것이라. 그렇게 택운은 갑작스레 튀어나온 심장을 가라앉혔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굉장했다. 이재환이 웃었어..!! 형이라고 불렀어..!!!! 그 이재환이..!!! 재환의 소문만 들어왔던 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택운을 바라보고 형이라고 부르니 당연히 신기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것이었다. 심지어 그 대상이 소문에 1도 관심 없는 택운이라니. 역시나 택운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재환을 대했다.
"응, 잊어버릴리가. 근데 나도 매번 매점 가는 게 아니라서. 넌 매번 가?"
"아뇨, 그냥 형이랑 가고 싶은 거라서 형 편한 쉬는 시간으로 하세요"
"음, 그럼 2교시 마치고 갈까? 아, 근데 갑자기 형이라는 호칭은 뭐야?"
"그냥 친해보이잖아요. 불편하세요?"
"그건 아닌데..."
두 사람은 사람들이 계속 쳐다봐도 아무렇지 않게 서로 필요한 대화를 해나가며 학교 교문을 들어갔다. 택운의 친구들은 깜짝 놀라며 얼른 그들의 뒤따라 들어갔고, 그 둘이 각 반으로 헤어지는 순간까지 함께 했다. 교실로 들어와 택운에게 언제 이재환이랑 친해진 거냐며 묻기 시작했고, 택운은 그냥 어떻게 하다보니 친해졌다 라고 이야기를 전했지만 학교는 무서운 곳이었다. 둘이 함께 등하교를 시작하면서부터 학교 내에서 소문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언제나 그렇듯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두 사람은 생각보다 잘 맞았다. 가끔 매점에 가면 서로에게 음료나 간식들을 사주기도 하고, 매번 자신이 내겠다는 재환을 거절한 적도 많았다. 부자라고 돈 막 쓰지 말라며. 재환은 또 웬만한 부자 아니고 엄청난 부자라며 다른 것을 사주기도 했다. 야자 끝나고 집에 가면서 택운이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 재환은 평소 보지 못했던 웃음으로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다. 축구하다가 다쳤더니 양호실까지 수업시간에 달려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괜찮냐며 안부를 묻고, 쉬는 날에는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그 시간 동안 재환은 택운에게 그 어떠한 것도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았고 오히려 배려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택운은 그가 좋았고 편했다. 둘만 있을 때에는 고양이로 변해도 되었고, 택운과 함께 지내는 재환의 웃는 모습도 많이 보게 되었다. 처음 본 외로움은 서서히 잦아드는 것만 같았다.
"와..정택운 니가 그런 후배 끼고 다닐 줄은 몰랐다. 쟤도 그렇게 웃는 애였는 줄도 몰랐고. 이래서 소문 믿을게 안되나봐."
오늘은 재환이 집안사정 때문에 학교에 나오지 않아 택운이 교실에서 전혀 나가지 않자 친구들이 택운의 근처로 와 앉더니 말했다.
"...생각보다 괜찮은 애야. 소문 만큼 무섭지 않고, 싸움 한다는 것도 그냥 얘가 잘나니까 퍼트려진 소문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오, 선배마인드냐?"
선배라, 그 애가 나를 선배라고 생각이나 할까. 행동하는 건 그냥 조금 많이 친해진 친구정도랄까. 그래서 택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말했다.
"...아니, 친구 마인드."
욱씬.
택운은 갑자기 아파오는 가슴이 이상했다. 자신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대체 왜 아프지. 잠시 아팠다가 사라진 느낌이라지만 택운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 날 하루 종일 뭔가 풀리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에 물을 마셔보기도, 탄산음료를 마셔보기도,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커피를 마셔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택운은 뭔가 얹힌 것 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대체 뭐가 문제이길래 이렇게 답답한거지. 아, 이재환 집이나 갈까. 고양이로 있으면 조금 편해질 것만 같았다.
오늘은 야자를 하지 않는 날이었다. 그래서 그랬던 건지 학생들은 학교를 끝나자마자 교문을 나가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만의 여유냐며 피씨방이나 가자며 택운을 꼬셔댔다. 내키지 않았지만 간만에 친구들하고 놀아주기로 결심한 택운은 친구들과 함께 피씨방으로 향했다. 교문 근처에 다다르자 교문 밖에 서 있는 익숙한 인영에 택운의 심장이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빠르게 뛰는 심장에 그대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야, 저기 이재환 아니야? 오늘 학교 안 왔다고 안..야, 정택운"
"...어,...어, 너네 먼저 가."
택운은 자신을 부르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천천히 걸어 재환의 앞으로 다가갔다. 재환은 그저 자신에게 매일 웃는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평소 내리던 앞머리를 까서 안 그래도 선명히 잘생긴 얼굴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또 평소 입던 옷은 어디로 간 건지 핏이 딱 맞는 수트를 입고 서 있는데 처음엔 모델인 줄로 알았다. 택운은 자신의 심장소리를 무시했다.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왜.."
학교로 온 거야?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이 하나도 재환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재환이 말했다.
"형 보고싶어서요"
깜짝 놀라 동그랗게 뜬 눈으로 재환을 바라보자 그가 싱긋 웃었다. 그래서 한 번 더 물었다.
"왜...?"
"그냥, 보고싶어서 오면 안되는거에요?"
"..안 되는 건 아닌데.."
갑작스레 훅 들어오는 다정한 목소리에 택운의 얼굴을 빨개질 대로 빨개졌고, 재환은 빨개진 택운을 보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형, 어디 아파요? 얼굴이 너무 빨간데? 형? 재환이 부르는 소리마저도 이제 들리지 않는 건지 택운은 그저 재환의 발만 바라보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죠?"
"...응"
"그럼 저랑 저녁 먹으러 갈래요?"
"저녁?"
"네, 형하고 저녁 먹고 싶어서 가족외식 안 먹고 왔어요"
"..응"
오늘따라 형 너무 단답형인데, 화난 거 있어요? 묻는 재환에 택운은 또 고개만 도리도리. 재환은 걱정은 됐지만 더 이상 이야기 해줄 것 같지 않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고, 그대로 택운과 함께 길을 걸었다. 차 타고 가지 않느냐는 듯 바라보는 택운에 재환은 형이 가고 싶은 곳 이 밑에 있잖아요. 라고 대답했고, 또 그 말에 택운의 심장은 제 멋대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아니, 원래 있었던 일인데 재환이는 항상 나를 배려해줘서 나 가고 싶은 곳으로 갔는데. 건널목에 도착하자, 근처에 편의점이 보였지만 택운은 여전히 생각에 빠져있었다. 재환은 편의점에 들릴 생각을 했고, 살짝 고민 후 택운에게 말했다.
"형, 저 잠시만 편의점 좀 다녀올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으,응"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택운에 재환은 조금 걱정이 됐지만 재환은 빠르게 다녀오면 될것이라 생각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택운이 이상해보여서 음료라도 사 줄 심산이었다. 그런 재환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택운은 그저 자신의 심장이 왜 이렇게 빨리 뛰는지에만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러다 재환이 어디에 갔는지도 생각지 못한 채 파란불이 켜지자마자 택운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고, 소설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택운!!!!!!!!"
퍼뜩,
정신을 깨우는 목소리에 택운은 뒤를 돌아보았고, 세상이 이상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트럭도, 지나가던 사람들도, 트럭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들이 전부 그대로 멈춰져 있었다. 그리고 재환이 자신의 팔을 잡고 인도로 이끌었고,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신호를 보고도 그냥 지나가는 트럭과 놀란 사람들과 트럭을 욕하는 사람들. 택운은 방금 본 것들이 분명 처음이 아니었다. 비슷한 경험이 분명 있었다.
"...이재환 너..."
"허억, 흐어, 흐어어어어"
마라톤이라도 뛴 듯한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는 재환에 택운은 한 번 보았던 그 상황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재환이, 죽어간다.
"병원, 병원 갈까? 재환아 괜찮아?"
너무 놀라 택운이 재환을 부축하며 물었고, 재환은 괜찮다는 듯 손으로 제스처를 취하고는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1분이 10분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5분정도 흘렀을 때가 되어서야 재환은 진정하기 시작했고, 택운의 부축을 받아 근처 공원에 있는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후...형은!! 내가 편의점 다녀온다고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트럭에 치일 뻔 했어요 알아요?!"
".....너, 진짜 너가 한거야?"
"시간 멈춘 거 이야기 하는 거라면 네, 제가 했어요. 안타깝게도 형은 제 시간 멈추는 능력이 통하지 않구요"
"...너.......초능력자야?"
"형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형 죽을 뻔 했다고!"
평소 자신에게 많이 웃어주고 자상하게 대해주던 재환이 화를 내니 택운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사실 자신이 정신 빼놓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아니 그것보다 지금 초능력자라고, 아니 근데 일단 살려줬으니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데 택운은 아무 말 없이 힘들어하는 재환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떼어냈다.
"재환아"
"네"
"...그...고마워 살려줘서"
"진짜 고마워해야 돼요. 저 지금 3일치 초능력을 한꺼번에 몰아서 썼다구요"
아까보다는 나아졌지만 얕은 숨을 몰아쉬는 재환을 보며 택운은 재환의 앞으로 가더니 앉아있는 재환을 살포시 안아주었다. 평소에 동생처럼 상냥하고 자상하던 재환이 자신에게 이렇게 화내는 것도 처음 보는데 또 힘들어하는 것도 같이 보이니 그저 자신이 엄청 잘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재환이 힘들게 안 해야지. 재환을 안아주며 생각하자 재환은 또 택운의 허리를 팔로 감아 포옹을 받아들였다.
"아, 좋네요. 형이 나 힘들게 안 한다는 생각도 하고."
"....!!!!!!"
택운은 얼른 재환의 팔을 풀어 떨어졌고,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한 채 재환을 바라보았다. 재환은 택운의 표정을 보면서도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떻게 할까, 모두 자신의 능력을 알아채고는 경멸했고, 무서워했고, 피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기억을 다 지워주었다. 언제 어디서 이런 능력이 생겼는지는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났고 컨트롤 하는 데에도 애를 먹었고, 마음만 먹으면 기억을 조작하는 것도 가능했다. 한 번 사용하면 한 달은 누워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능력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인간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비록 집안을 보고 접근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친구라고 말하는 것들이 생겼고, 그렇지 않다면 매일 양아치 짓만 하는 사람들이 곁에 붙어 있었다. 덕분에 여러번 싸움도 했고, 불편했지만 미움 받기 싫어 그저 조용히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랬더니 어느새 그들의 중심에는 재환, 자기 자신이 있었다.
그러던 중 하얀 고양이를 만났다. 아름답고 고고하면서도 자신을 위로해주는 것만 같아 매일 그를 찾았다.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고양이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능력을 사용해 생각을 읽으려 했다.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버렸다. 능력 컨트롤이 되지 않아 기억을 읽어버린 것. 그 안에서 재환은 자신의 능력이 개방된 시점을 알게 되었다. 고양이. 그래 하얀 고양이를, 교통사고 당할 뻔한 하얀 고양이를 도와주려다 초능력이 나왔지. 자신을 본 모든 사람들을 후에 찾아가 기억을 없애느라 한참이 걸렸었지. 그게 처음이었다. 그 고양이가 이 고양이었다. 만나서 기뻤다. 신기했다. 자신이 구해 준 고양이가 살아서 자신의 옆에서 위로를 해주고 있다니. 그래서 더 그 고양이를 찾았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고, 택운을 만났다. 고양이의 아우라와 똑같았다. 이상해, 그럴 수가 없는데. 동물과 인간의 아우라는 전혀 다른 느낌인데. 몇 일 동안 택운을 미행 했고, 사진을 찍었다. 수인. 학교 도서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아주 예전에는 수인이 함께 인간과 어울려 살았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그래서 그들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조차 없다고 들었었다. 그런데 자신이 만났던, 자신을 위로해 주었던 것이 수인이었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화가 나야하는 걸까, 좋아야 하는 걸까, 자신을 위로해 줄 수'인'도 인간이라며 행복했던 걸까. 사진으로 그를 협박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그냥 그가 나와 함께 해줬으면 했다. 무슨 감정인지 모를 이 감정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그렇게 재환은 택운을 사랑한다 확신했다.
"기분 나쁘죠..마안해요 지금 능력 컨트롤이 안 돼요."
".....그, 미리, 말은 좀 해줘.."
".....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재환이 놀라 바라보자 택운은 눈이 마주친 것이 또 부끄러웠던 것인지 살짝 볼을 붉히며 말했다.
"놀라잖아, 너 무슨 능력은 있다고 나 한테 말했으니까. 그러니까 말 좀 해.."
"네, 미안해요"
살짝 웃음을 머금은 대답을 한 재환에 택운은 아까보다 더 붉어진 홍조를 애써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정적이 찾아오고 바람이 살살 불어왔다. 봄이 지나가는데도 겨울이 아직 덜 끝난 듯 조금은 차가운 바람이 재환과 택운을 지나쳐갔고, 재환은 일어나 바람에 날리는 택운의 머리카락을 살살 헤집고는 활짝 웃었다.
"고마워요"
"뭐가"
"저 지금 기다려주는 거랑, 저 위로해 준 거랑, 또.."
"됐어, 나도 처음엔 협박 때문이었지만 너가 나한테 잘하려고 하는 것도 알았고, 조금 학교 생활이 재미있더라. 너도, 재미있었으면 좋겠는데...내일은 학교 나오지?"
붉은 얼굴을 숨긴 채 말하는 택운에 재환은 얼굴에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편하게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웃어봤던 날이었다. 그래서였나, 붉은 얼굴의 택운을 봐서였나 잘은 모르겠지만 용기가 생긴 것 같았다.
"택운이 형"
"왜"
무뚝뚝하게 대답한 택운에 재환은 더 멍뭉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택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좋아해요"
"..............어?"
"좋아해요 택운이 형"
택운은 방금 재환이 한 말이 무엇인지 잠시 동안 생각했다. 저 말이 무슨 말이더라. 좋아한다. 아, 나도 얘 좋아하지. 근데 좋아한다고 대답하면 뭔가 안될 것만 같았다. 좋아하는 거랑 다른데. 난 너 안 좋아하는데...좋아하는 거 아닌데...
"그럼 좋아하는 거 아니고 뭔데요?"
"마음대로 남의 생각 읽지마"
"저는 형 한테 뭐에요?"
".........."
"정택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 사랑해"
사랑해. 재환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택운에게는 생소하지만 생소하지 않은 단어였다. 하고싶은 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저거라고?!!?!?!?! 아니야 그럴 리 없다. 이재환을 정택운이 사랑할 리가 없다. 그런데 계속 심장이 뛰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뛰던 심장이 더 심각하게 뛰기 시작했다. 아 어떡해, 심장 소리 다 들릴 것 같아.
"사랑해요, 택운이 형"
아, 인생은 삼세판이라고 했다던가. 상냥한 표정에 잘생긴 얼굴에 택운은 그대로 넘어가고야 말았다. 안 그래도 빨갰던 얼굴이 더 빨개졌고, 한참동안 재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앞에 보이는 재환의 손을 잡아버렸다.
"몰라, 배고파 저녁 먹으러 가자"
"혀엉~대답해 주셔야죠"
"모,몰라!! 계속 너 그러면 내일 점심 같이 안 먹는다!"
"아 혀엉~~"
언젠가는 택운이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재환에게 말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