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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이야기

 

지니

@dreamingstars15

*본 픽션은 ‘LAST FANTASIA by N’ 과 ‘향-Possession’ 을 연결 짓는 데에 중점을 뒀다는 것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사람들이 말해. 이 세상에도 ‘빛’ 이라는 게 존재했다고. ‘빛’이 뭐냐고? 검은 하늘에 하나의 하얀 점 같은 존재였지. 살아생전 ‘빛’이 사라지는걸 목격했던 용감한 사람들은 말해. 마치 작지만 확연했던 작은 빛 한줄기가 검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없어졌다고. 그리고 또 말해 ‘빛이 그립다......’고.

 

옛날 이야기 w.지니

 

‘할무니’

재환이 마루에 앉아있던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그 옆에 풀썩 앉았다. 아직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며 몸집이 작아질 대로 작아진 할머니와 얼추 비슷한 체격이다.

 

‘나 옛날 이야기 해줘!’

 

‘옛날 이야기?’

 

어두컴컴하고 삭막한 이 세계에서 재환이 제일 좋아하는 건 할머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그 중 어둠과 맞서 싸웠던 하얀 기사의 이야기를 해 줄 때면 재환은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며 아껴 들었다.

 

‘웅! 하얀 기사님께서는 어떻게 되셨나요?’

 

‘내가 어디까지 했더라?’

 

‘하얀 기사님이 환영에 홀려서 숲까지 갔었지요.’

 

하얀 기사. 이름은 차학연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의 귀와 입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가 마지막 ‘빛’이었다고. 그가 실종되면서 빛 또한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럼 오늘 이야기가 마지막이 되겠구나.’

 

재환이 실망한 눈치로 할머니를 쳐다봤다.

 

‘벌써 마지막이라뇨......재환이는 하얀 기사님 이야기가 재미있는걸요.’

 

‘대신 다음에 들려줄 이야기는 더 재미있으니까 기대해도 좋단다.’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던 재환은 새로운 이야기의 존재에 대해 알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하얀 기사의 이야기를 빨리 마무리 짓고 새 이야기를 듣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 하얀 기사님이 숲에 도착해서 어떻게 되셨나요?

 

‘그 하얀 기사님께서는 당연히 놀라셨지. 오랫동안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지키셨는데도 이런 숲이 존재하는지는 처음 알았으니까.’

 

———-

학연은 이상함을 느꼈다. 아니, 이상함이 보였다.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지금 자신의 눈에 보이는 건 분명 새로웠다. 어딘가 에도 있지 않은......장소. 누군가 허상으로 만들어낸 듯한 환상. 이제는 괴기하게 보이는 썩은 나무들과 붉은 빛. 그리고 짙은 안개.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한 아이가 울며 달려와 자기 부모님이 죽었으니 도와달라고 해서 따라간 것. 아이가 어떻게 생겼더라? 말랐지만 큰 키에 검은 머리. 그리고 울지 않았더라면 이상했을 아이와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눈매. 또......하얗다 못해 창백했던 피부와 상반되었던 검은 옷.

그 아이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학연은 그저 멍하니 어딘가에 홀린 듯 걸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여기에 서 있었고.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니 눈에 띄는 이질적인 검은 무언가.

 

‘토드’

 

토드. 죽음. 자신을 꾀어낸 것도, 여기까지 이끌고 온 것도 토드였다. 세상의 빛을 소멸시킨다는 악마.

 

‘네 놈 때문에 세상에 빛 따위가 존재해서. 이제는 사라져 줄 때도 되지 않았나?’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가소로웠다. 아니, 무서웠다. 아니, 가소로웠다. 끝없이 자신을 최면하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미 정신이 혼미해졌다.

 

‘네가 이 세상의 방해물이니까. 이미 빛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야. 어둠만이 잠식 할 뿐.’

 

학연은 눈을 감았다. 곧 어둠이 자신을 덮치고, 온 세상이 완벽한 어둠으로 물들었다.

 

———-

 

이야기는 끝이 났어도 답답한 느낌에 재환은 마루에서 일어나 검은 하늘을 바라봤다. 마치 저기 어딘가에 하얀 기사의 흔적이라도 찾듯이. 재환이 태어나기 한참 전에 빛이 사라졌기에 빛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어린 재환에게는 ‘좋지만 이제는 없는 것’ 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었다. 재환은 이야기의 끝을 본 것에 아쉬운 마음을 감추고 다음 이야기에 대해 물어보고자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할머니가 앉아있었던 자리엔 짙은 어둠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

 

그렇게 할머니가 사라진 지 몇 년 후, 재환을 원체 예뻐라 했던 마을 사람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모아 가져다 준 것에 보답이라도 하듯, 재환은 건장한 청년으로 잘 자랐다. ‘빛’이 존재할 때 살아계셨던 노인들은 가끔 ‘저 아이가 하얀 기사의 뒤를 이을 수도 있겠구먼’이라고 속삭였다. 이제는 마을 사람들을 되려 도와주며 독립적으로 살게 된 재환은 신자였던 할머니의 믿음을 이어받아 사제로서 신실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환을 비롯한 모두가 어둠에 적응 되는 듯 했다.

 

‘이재환’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우리는 지켜 주시오며......’

 

‘이재환’

 

‘유혹을 떨치게 하시옵고......’

 

‘이재환!’

 

‘...’

 

세례를 받은 후, ‘다니엘’이라는 세례명과 함께 한 목소리가 본인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재환은 매번 기도를 올리며 무시했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기운이 성당 안을 맴돌았다. 곧 그 기운이 한데 뭉쳐지더니 인영이 나타났다. 저와 같은 사제복을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한 사내. 고생이라도 한 듯 머리 부분부분은 회색으로 희어있었다.

‘누구지?’

 

‘이런. 너의 운명을 거부해서 쓰나.’

 

‘무슨 말이지?’

 

‘너랑 계약을 하러 왔다. 네 영혼을 담보로.’

 

속으로 끝없이 기도를 드리며 무시하려던 찰나, ‘계약’ 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박혔다.

 

‘계약이라니.’

 

‘차학연. 그를 세상에 돌려놓겠다고 약속하겠다. 다만 너의 도움이 필요해. 세상을 잠재우기 위해.’

 

할머니가 사라지면서 하얀 기사 이야기는 마음 속에 품었던 재환이었다. 가끔 할머니가 그리워질 때 마다 생각했던 하얀 기사. 영웅이라고만 생각해왔던 그를 세상에 돌려놓을 수 있다. 바로 자신이.

 

옛날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현실이 환상으로, 환상이 비극으로 치닫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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