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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속의 꿈

 

엘리아 제이

@elLia_J_05

나는 살아 있는가

잠들어 있는 정신 밖으로 겨우겨우 아둥바둥 힘써보지만 지쳐간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득한 바닷속으로 떨어져

죽어가는 기분이야-

 

 

 

 

바닷속의 꿈

W. 엘리아 제이

 

※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명, 지명 등은 실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

 

 

 

 

 

 옷가지가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고 몇 개의 쓰레기가 침대 아래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딱 6-7시쯤 되었을 때였나, 그는 우울감에 침대에 뒹굴고만 있었다. 창문 밖에서 들어온 파란 빛이 조금이나마 위로해주는 듯했지만 다 부질없었다. 어젯밤, 몇 번이나 어머니가 몇 번 방에 들어오셔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찌질하고 멍청한 짓을 했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지만. 

 

 "아-, 후우우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차가워진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향한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핼쑥하게 비쳤다. 푸르죽죽하게 진 다크서클과 붉게 물들어 부은 눈, 밤새 끼고 누워 있었던 탓인지 약간 찌그러진 안경과 볼과 광대 위 눈물자국까지. 안경을 벗고 수돗물을 틀어 온수에 손을 적신다. 그리고는 젖은 손으로 얼굴을 빠르게 쓸어내리며 씻어냈다. 미지근하게 적셔진 얼굴이 얼얼했다. 아야, 볼 한가운데에 무언가에 베인 듯한 상처를 자각했다. 이건 또 언제 생긴 거야. 쓰라리고 욱신거렸지만 별로 신경쓰고 싶지는 않았다. 귀찮아. 대충 서랍장 속의 밴드를 꺼내 붙이고는 다시 눈을 비빈다. 아아아아아-.

 

혼자 있어도 절대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구나.

 

거울을 봤더니 부스스한 머리가 번지르르하게 빛이 났다. 대충 물을 틀고는 머리카락을 적셨다. 옆의 병에 담긴 샴푸를 짜내고 거품을 냈다. 거품이 머리카락에 송글송글하게 맺히더니 수돗물에 닿아 사라지기 시작한다. 대충 다 헹궈냈다 싶어서 고개를 들고 수건과 함께 머리를 몇 번 털어내자, 흐리멍텅한 세면대 거울로 보이는 뽀얀 얼굴. 

 

아침부터 우울하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억지로 잠시 헤실헤실 웃어본다. 그러나 다시 굳어버리는 얼굴에 아직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괜찮아. 라며 애써 도망가듯 다락방을 향하여 계단으로 올라간다.

 

 

 

 

-

 

 

 

 

열쇠를 끼우고 돌린다.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방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방 속으로 등을 슬며시 비추어 본다. 그의 세계. 오직 그만의 작업실이자 서재인 그 다락방. 손가락으로 먼지를 쓸어 본다. 오랜만에 들어와서인지 책상 위에는 먼지가 한가득 쌓여 있는 듯 하지만, 상관 없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자 하얀 빛과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시원한 바람이 먼지를 일으키며 휘날린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아련하게 마음에 적셔진다.  모래색 종이의 책들과 뽀얀 프린트들이 반짝여 빛났다. 하얗고 긴 예쁜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이윽고 멈추고 하품을 들이키는 그.

 

"흐아아아암... 지루해."

 

필통에 꽂혀 있던 형광펜으로 책의 대사 하나를 밑줄치고는 귀찮은 듯 던져 버린다. 툭. 떨어트려진 형광펜에 뭔가 퉁명한 소리가 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래된 책장 벽의 틈 사이로 떨어졌을 것이 분명한 얇은 책 한 권. 

 

"Rêve, de Nymphes..?"

 

프랑스어로 된 제목, 꿈의 님프들이라...

신비로워 보이는 표지에 이끌리듯 펼쳐본다. 첫 페이지의 글은 제목과 달리 영어로 쓰여 있었다. 인쇄된 게 아닌 손글씨로 직접 적힌 듯했다.

 

-

 

Way to get in

(* 들어가는 방법)

 

1. Draw a circle and a star in circle, and write down the word, "My Value" on the floor, use white chalk.

(* 1. 바닥에 하얀 분필을 사용하여 원과 그 안의 별 하나를 그리고, "My Value"라고 적어라.)

 

2. Next, chant these sentences-I am a stranger but I can give you some help. I request to open the door, in the name of the VIX.

(* 2. 다음은, 이 문장들을 외워라.

"저는 낯선 사람이지만 여러분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VIX의 이름으로 그 문을 열어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3. Last, keep silence for 5 seconds

(* 3. 마지막으로, 5초 동안 침묵을 지켜라.)

 

-

 

"뭐야, 이거?"

 

황당하지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상한 글.  누가 이걸 따라해. 라며 혼잣말해보지만 이미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분필로 목재로 된 바닥 위를 서걱서걱하고 그어 보며 따라하는 그. 

 

"I am a stranger but I can give you some help. I request to open the door, in the name of the VIX...."

 

 

5.

 

 

4.

 

 

3.

 

 

2.

 

 

1.

 

 

 

 

 

쿵.

 

 

 

 

 

*

 

 

 

 

 

눈을 뜨자 온갖 나무들이 보이고 새 소리가 들렸다.숲..?인 것 같은데, 처음 보는 광경이라 좀 많이 당황스러울 뿐. 정신을 차려보니 웬 줄로 나무와 묶여 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무언가 달콤한 향기가 났던 것 같은데. 분명 난 우리 집 다락방에서..다락방에서, 책을.. 그래. 분명 이상한 책 하나를 읽다가 따라하는 중이었을 텐데..

어쩌다 여기 묶이게 된 거지?

아니, 그건 모르겠고 그래서 여긴 어디...

 

"뭐야, 눈 떴어?"

 

위에서 들리는 소리.

고개를 들어 봤더니 내 또래 정도의 나이대로 보이는 남자애가 굵은 나뭇가지에 올라앉아 있었다. 특이하게..귀가 좀 많이 크고 뾰족하게 생겼다.

 

"안녕."

 

어..어어???

뭐랄까, 그냥 좀 어이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어..저기..네가 날 묶은 거야?"

 

"......"

 

"..이것 좀 풀어줄래??"

 

"...아니."

 

흣챠, 하고는 나무에서 뛰어내리더니 입을 뗐다.

 

"너 감시하라고 학연이가 시켰단 말이야."

 

.......학연?

 

"음.., 그렇다고 꼭 이렇게 묶어놓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감시하기 귀찮아."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학연이가 누군데?"

 

"우리 대장."

 

"그럼 너는?"

 

"나? 나는 몰레스족 정택운이야."

 

"몰레스족이 뭔데?"

 

"....안 알려줄거야."

 

"...그럼 학연이라는 애를 보게 해줘."

 

"싫어."

 

"그럼 몰레스족이 뭔지 알려주던가."

 

"허...

 

안 도망치기로 약속하는거다."

 

"..그래."

 

택운이는 금세 내가 묶인 줄을 풀어주더니 손을 잡아 낚아채고 뛰기 시작했다.

울퉁불퉁하고 습기찬 풀바닥이 미끄러웠다. 숨이 차기 시작하자 이내 금방 어두컴컴한 숲에서 벗어나 새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이 몽실몽실 귀엽게 퍼져있고 노란 해가 마치 예쁘게 잘 구운 황금빛 달걀 프라이 노른자 같은, 그런 파란 하늘.

 

"학연아-!!!"

 

"엥, 택운이 형?"

 

"뭐야, 라비야! 학연이 어디갔어?"

 

라비?

그 아이도 특이하게 뻗어진 뾰족한 귀를 갖고 있었다.

 

"저- 쪽으로 갔는데.."

 

"아-.. 몰라! 걍 너도 따라와!"

 

택운은 라비라는 아이에게 소리치더니 그의 옷을 잡아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왜?!!"

"어느쪽이야 그래서..!!"

"저쪽.."

"헉..헉....저기...어디 가는 거야 지금..?..쿨럭"

 

이윽고 한 동굴 앞에 다다르자 그제서야 택운은 뜀박질을 멈췄다. 동굴 안에서는-, 안에서는 2명의 소년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역시나, 크고 뾰족한 귀를 가진.

 

"하..허..후우.."

 

"..후..학연아-!"

 

"뭐야. 왜 여기 왔어..?"

 

택운이 학연이라 일컫자 거기에 있던 한 소년이 대답했다.

 

나는 힘껏 소리쳤다.

"너네 뭐야..!!!"

 

그것이 나와 그들의 완전한 첫 만남이었다.

 

 

 

 

*

 

 

 

"우리는 너희 인간들이 일컫는, 흔히 말하는 요정의 존재로써 살아왔어."

 

"뭐?"

 

"믿기 힘들겠지만 우리는 요정이야. 그리고 여기는 네가 살던 그 세계도 아니고. 원래 특별한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는데.." 

 

말도 안 돼. 이게 꿈인걸까-.

 

당황스런 표정을 짓더니 얼굴이 굳어 버린 그.

 

"동화책 속에 나오는 그 요정..?"

 

"그래. 맞아. "

 

"근데 네가 갑자기 들어와버린 거고."

 

"..나무에는 왜 묶어둔 거야?"

 

"처음 들어오는 인간들은 꼭 궁금하단 이유로 사고를 치기 마련이니까."

 

뭔가가 건들어졌는지 충격을 받아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미안."

 

울면 안되는데.

울면 안되는데.

 

울망똘망해진 그의 눈가에서 이슬 같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야, 울지마. "

 

"학연이형, 뭘 그렇게 애를 몰아요.."

 

"와 형이 너무했다."

 

"겨우 이거 가지고 너무하긴... 홍빈인 어디갔어?"

 

"걔 오늘 바다가서 순찰하는 날이잖아요. 에휴."

 

"저기.. 니네 이름이 뭐야?"

 

"..일단 전 몰레스족 혁이고요. 이쪽은 우리 대장이자 리규족인 학연이형. 이쪽은 몰레스족인 택운이형, 리규족 라비형.

본인 이름은 뭐에요?"

 

"나...난 켄이야.. 켄 스미스 빅스(Ken Smith Vix)."

 

"그렇구나."

 

"저기, 아까부터 이야기하던데 몰레스족은 뭐고 리규족은 뭐야?"

 

"허.."

 

"괜한데서 삐치지 마요. 택운이형."

 

하고 잠시 뜸들이더니 혁이가 말했다.

 

"요정들은 대강 리규족, 몰레스족, 레브족으로 구성되어있었어요. 뭐 우리야 섬에서 탈출해서 굳이 구분할 필욘 없지만. 그냥 거기서 생활하던 조들의 방식 차이였고 일종의 계급이었죠. 리규족은 정말 규칙적으로 일하고, 여가를 보내고, 정말 시간이 딱딱 떨어져 있는 무리를 말했어요. 인간으로 친다면 중산층이랄까..

 그리고 몰레스족은 모든 일정에서 자유롭게 사는 무리였어요. 문제는 민폐아들이 많은 계급 최하층이어서 차별을 많이 받았다는거. 마지막으로, 레브족은. 이쪽도 그렇게 별 걸 하진 않는데 몰레스족들보다는 비교적 규칙적인. 꽃을 다루는 일들을 많이 해서, 성과가 꽤 있었어요. 홍빈이 형이 이 계급이었죠. 그쪽은 계급 최상층이에요."

 

"홍빈이가 누구야..?"

 

"저희랑 같이 섬에서 탈출한 멤버에요. 말했다시피 유일하게 레브족이죠."

 

"섬은 또 어디..!"

 

"아아, 이 형 귀찮네. "

 

학연이가 대답했다.

"섬은 특이한 사회를 갖춘 제국이었어. 우린 일종의 실험체였고, 그래서 탈출한거야."

 

".. 뭔 말인지야 모르겠지만... 나처럼 인간이 이 숲으로 떨어진 적이 혹시 더 있었니..?"

 

택운이가 대답했다.

"어.. 있기야 있지. 보통 일주일 내로 돌아가게 되긴 하지만. 아, 학연이랑 나한텐 형이라고 불러라."

 

"..왜?"

 

"서열상으로 저 형들이 주요 조직이거든. 대장님과 부 대장님. "

 

"거참, 신기하네. 근데 난 그럼 여기서 살아가야 하는거야?"

 

"일주일 정도니까 뭐...여기서 당분간 우리랑 지내야지 넌. 야, 벌써 해가 지니까. 잠이나 자자."

 

"담요 덮어요, 켄 형."

 

"고마워."

 

-

 

"역시 혁이랑 라비가 제일 열심히 챙겨주네. 그렇게 예전에 겪어놓고도.."

 

"오히려 그래서 더 그런 거겠지...안쓰럽다. 앗, 홍빈아, 왔어?"

 

"뭐야, 또 새로운 인간이 왔어요? 무슨 엿장수도 아니고 매년마다 온담."

 

"하하하..일하고 오느라 수고했어, 오늘 바다는 어땠어?"

 

"아, 별 일은 없었는데 반지같은 걸 얻었어요. 6년전 빅스가 지니고 다녔던 거랑 비슷한거."

 

"빅스? 되게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그 녀석 잘 살려나.."

 

"모르겠어요. 뭐 잘 살고 있겠죠. 아참, 새로운 인간 이름이 뭐예요?"

 

"켄. 켄 스미스 빅스래.

...잠깐."

 

"...어떻게 이런 일이..?"

 

"어쩐지.. 신기하다.."

 

"벌써 6년이 지났는데도..."

 

"시간 참 빠르게 가네요. 이번엔..안 갔으면 좋겠다."

 

"..그래. 잘 자고."

 

 

 

*

 

 

 

 

켄이 온지 하루 된 날 아침, 북적이는 동굴.

홍빈은 꽃밭으로 혁과 켄을 불렀다. 켄은 영문을 모르지만 꽃밭이라는 말에 기뻐하며 혁에게 포옹했다.

 

"어유, 형. 무거워요!"

 

이윽고 홍빈의 꽃밭에 도착한 그들.

 

바다가 보이는 푸른 들판 위 온갖 은빛, 황금빛 꽃들이 수놓은 모습이 놀라웠는지 켄은 입을 틀어막는다.

 

"홍빈이형!!"

 

"오오, 혁이 왔어?"

 

"안녕,하..세요..?"

 

"아아, 켄형이죠? 전 홍빈이에요. 꽃 기르는 거 엄청 좋아하는데, 구경 맘껏 하고 가세요. 무슨 꽃 좋아해요?"

 

"어어.. 아무거나.."

 

"사실 저도 아무거나 다 좋아해요!"

 

"저기..."

 

"네!"

 

"바다 좀 보러 갔다와도 될까요?"

 

잠시 고민하다 대답하는 홍빈.

"음...그러세요!"

 

"감사합니다!"

하고는 저멀리 바닷가로 서둘러 뛰어가는 켄.

 

"아쉽다.."

 

 

 

 

벌써 이렇게나 빨리 가버린다니..

 

 

 

 

 

*

 

 

 

서둘러 바다에 몸을 담갔다.

모든 꿈이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지치고 싶지 않아.

미안해,

미안해.

아니 사실 미안하지 않아.

편안하게

나를 가만히 냅둬줬으면 해.

그래야 내가.

두려워하지 않을테니까.

 

-

"넌 네 약점을 다 이야기하고 다니잖아?"

 

아니야.

난 그렇지 않아.

-

 

나는 그때부터 가식덩어리가 되어버리기로 결심했는데.

 

 

나는 살아 있는가

잠들어 있는 정신 밖으로 겨우겨우 아둥바둥 힘써보지만 지쳐가는걸.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득한 바닷속으로 떨어져

죽어가는 기분이야-

 

 

 

 

정..말.

정...말..

아득히...

안녕..

 

 

 

"켄형!"

 

가지마.

잡아줘.

손을 뻗을게.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살아줘.

우리랑 있어줘.

 

-

"꼬마야. 안녕?"

 

"흐흑..흑..저기...형들.."

 

"응?"

 

"...제가 죽도록 도와주세요"

-

 

우리는 너희의 꿈의 요정들이니까.

 

 

 

 

*

 

 

 

 

 

그는 다시 깨어났다.

 

"...어어어..?"

 

꿈이였던 걸까.

눈가를 비비고는 창문 너머로 붉은 해질녘의 하늘을 바라보는 그.

 

"후우...."

 

 

 

"바보들아.

붙잡았어야지."

 

 

 

-

 

 

 

미안, 그럴 수 없어.

우리는 언제까지나 네가 다시 또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줄 뿐이야.

친구야.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안해.

그리고, 살아줘서 고마워.

안녕.

 

 

 

바닷속의 꿈. Fin

© 2019 vixx fantasy collaboration imagination&subconsc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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